💌 시 메일링 「히히힛」 7. 일주일은 짧네요

2024. 9. 20.

격주 시 메일링「히히힛」 0. 뚜껑을 닫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시의 시대가 찾아왔다

작년 여름부터 '책방 오타루'란 동네책방의 단골손님이 되었습니다. 지역 동네책방 특유의 큐레이션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해왔지만 어느 한 장소의 단골손님이 되었다고 말할 만큼 거리를 좁히지는 못했었는데요. 드디어 정착할 곳을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여기에 더욱 발붙이게 된 것도 시 덕분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봄부터, 책방 사장님의 제안으로 시집 독서모임을 이끌게 되었거든요. 매달 한 권의 시집을 정하고 시집 읽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시 이야기를 나누게 된 지 반년이 넘었습니다. 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는 게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말해지길 바라는 것이 화두에 오르는 매 순간을 목도하고, 그 대화의 자리를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동인들과도 시 이야기를 나누곤 하지만, 시를 "읽기 경험" 그 자체로 향유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또 색다른 일이지요. 읽는 집단에서 나누는 이야기와, (읽고 난 다음) 쓰는 집단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습니다. 둘은 공존할 수도 있고 별개로 나누어질 수도 있으며, 이따금 구분 없이 부유하기도 합니다. 비슷한 데로 이어지는가 하면 완전히 딴 길로 새 버리기도 하는 것이, 시 이야기란 그야말로 시와 닮은 데가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시집 독서모임에서는 신해욱 시인의 신간 시집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봄날의책, 2024)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출판사의 신간 소개글에서 시집 제목을 보자마자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열어야지,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최근 인간이 자연사할 수 없는 세계를 담은 시를 썼기에 도무지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쓴 작품 속 세계에서는 더 이상 자연사할 수 없는 인간이 〈자연사박물관〉을 세워 자연사했던 과거의 인간들을 (박제하여)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시를 쓰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자연사(自然死)'가 '자연사(自然史)'가 되어가는 시간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시를 씀으로써 언어로 정의할 수 있는 '자연사'를 벗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듯하지만 동시에 끝없이 자연을 궁금해하고 의심합니다.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를 읽으면 우리가 '자연'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더 헤집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자연사'를 가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픈 욕망이 있었던 겁니다.

독서모임에 참여했던 J님께서는 '자연사'가 '自然事'로도 읽힌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연사가 곧 일상사가 되는 겁니다.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에는 인간의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누군가에겐 생소할 법한 일상물들이 다수 등장했기에, 무척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사(自然死)'가 '자연사(自然史)'가 되고, 또 '자연사(自然事)'가 되는 시간들. 죽음과 역사를 모두 우리의 파편으로 만듦으로써 아주 사적인 것을 공동의 자리에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모임에서 나누었던 '자연'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정말로 시는 독자의 것이로구나 생각했습니다.

책방 오타루 1주년 기념 산문집의 원고를 쓸 때도 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책방 오타루는 언제나 문학이 통과하는 지점이었고 그곳에서는 늘 문학을 통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인들이 만들어내는 고유한 '시적 언어'를 재미있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시를 읽는 독자들이 만들어내는 '읽기 언어'마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독자들의 읽기 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읽는 방식이 나름의 형식을 갖추고 함의를 품는 것을 발견할 때 느껴지는 희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읽기가 쓰기와 다름없음을, 이 또한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른 것임을 깨달을 때 저는 다음에 익히게 될 독자의 언어를 기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시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 시에 대한 개인의 애정을 공동의 것으로 치환하게 됩니다. 발화가 품은 것이 애정이 아닐지라도, 시를 읽는 우리들의 언어는 영영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 240920 / 히히힛 에디터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