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메일링 「히히힛」6. 시집도 집이다

2024. 9. 6.

격주 시 메일링「히히힛」 0. 뚜껑을 닫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시의 시대가 찾아왔다

지하철에서 시를 읽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지하철에서 시집을 읽다가, 똑같이 시집을 읽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리도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시집은 여러 날 동안 저의 출근 메이트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본래도 시 읽는 걸 좋아하지만, 지하철에서의 저는 시집을 더욱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활자와 함께 흔들리는 감각을 놓칠 수 없지요. 제가 이동함에 따라 시들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저는 회사로 가지만, 시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시들은 모였다가 흩어지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면서 고정되어 있지 않은 어떤 장소로 갑니다. 기약 없이 떠나는 것이 시이며, 그래서 언제나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시라고 믿습니다.

오늘은 서윤후 시인의 『휴가저택』을 읽었습니다. 지난 며칠간 시가 도무지 읽히지 않는 기분이었던지라, 쭉 (소설가와 시인의) 산문을 읽고 있었는데요. 웬걸, 우연히 두 편의 장시長詩로 이루어진 시집을 발견해 버렸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의 가을, 아침달 시집 5번으로 출간된 『휴가저택』입니다. 여름의 끝물에 읽기 참 좋은 시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시가 읽히지 않을 때도 무척 효과적인 시집. 두 편의 「휴가저택」은 오래 묵혀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게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노래의 모양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요, 전통의 운율이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시가 노래로 기능하는 순간을 목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사람의 마음이 시가 되어 그리 보인다는 걸 느꼈습니다. 논리적인 척할 때도 많지만, 시는 마음의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시를 읽고 싶은 대로 읽(어도 되)는 이유도 시가 마음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서윤후가 『휴가저택』에서 보여 준 '우울'과 '죽음'에 대한 시각, 그리고 '상처의 회복'은 어떤 인간의 언어로는 특정할 수 없는, 시라는 장르로부터 확장된 개념과도 같았습니다. 묵은 감정에 대해서 말하는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미지의 너머를 들여다보려는 태도. 그런 태도를 가진 화자 덕택에 우울에 대해 읽었지만 우울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죽음과 삶이 한데 붙어 있는 걸 봤고, 눈물이 났지만 아주 울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건강했던 내가 다녀오겠다고 한 뒤 돌아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기 위해 과거의 것들을 내버려둡니다. 쓰지 못했던 과거도, 써야만 했던 과거도 내려두고 지금의 마감 앞으로 달려왔을 때 그제서야 현재의 글이 보이는 것과 비슷할지도요.

'건강했던 나'도 과거의 나일 테지만, '아픈 나' 또한 언젠가의 과거로 보내게 될 존재입니다. 찰나의 차이로 다른 시간선을 갖게 될 여럿의 '나'는 시에 씀으로써 내가 아닐 존재들이 됩니다. 『휴가저택』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살 수 있으며, '휴가저택'은 '나'와 '나 아님'이 공존하는 장소가 됩니다. 그 때문에, '시집'이 곧 '집'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집을 엮는 것은 집을 지어 살 사람을 들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 권의 시집에 함께 엮임으로써, 시들은 잠시 묶음이 되어 정주定住하게 됩니다. 옛 시인들은 같은 시제詩題로 시를 여러 편 썼을 때, 그것들을 단순히 같은 시집에 묶어두기 위해서 제목에 번호를 매기기도 했습니다. 동명이인이 한집에 살게 된 겁니다. 생김새는 비슷할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요. 그들을 연작連作이라 부를 수 있을지 아닐지는,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고민할 문제입니다.

시들이 하나의 제목 아래 한데 엮일 때, 시인은 그에게서 떨어져 나온 수많은 자신들을 볼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어코, 시집이란 곳에 모여 살게 되었음을 깨달을 테지요.

서윤후 시인은 〈후문〉에서 말합니다. 원고를 다 썼을 때, 기나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것 같았다고. 휴가저택이라는 곳이 정말로 있었던 것처럼. 그건 아마도 '휴가저택'이라는 제목의 시와 시집이 결국, 시인(과 독자)에게 '휴가저택'이라는 '장소'로 치환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은 반대일 수도 있지요. 휴가저택이 시로 몸을 바꾸고 그것이 몸집을 불려 시집이 되고. 여행을 다녀온 '나'로부터 떨어져 나온 무언가들이 (더이상 '나'라고 부를 수 없는) 텍스트로 남게 되고. 이 페이지들 어딘가에는 제가 아직 찾지 못한 침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는 제가 아직 찾아 읽지 못한 또다른 「휴가저택」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사람의 마음에 걸쳐 있습니다.

시집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시집이야말로 내가 영영 살아갈 곳이겠어. 거기 살고 있는 게 '진짜' 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렴 어때요. 내려두고 싶은 마음을 내려둘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더구나 그곳이 바로 시집이라는 건 참 좋은 일일 겁니다.

― 히히힛 에디터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