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에 천장은 없으니까 붉은 인간의 무단횡단, 행간 사이를 거침없이……

(이것은 건강달리기인지 검토가 필요해.)

듣고 있어? 나는 언젠가 입 속에서 찰랑거리는 달걀들을 씹어 짓이겨 삼켜야 하는 거야

제임스는 왜 그랬을까 이 춤사위는 꼬마김밥처럼 간편하지는 않더라, 다섯 개를 넘었어

무게는 언젠가 점프가 될 거야 쌓이는 참회들의 꼭대기에서 건네는 꽃과 악어를 향한

샤를카미유의 사단조 교향시…… 왜냐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니까

마구 섞여 부패하지 말고 천천히, 생동에도 조화가 필요해 보존이 필요해 알고 있지만

찰나에서 영원을 꿈꾸는, 순간에서 완성을 꿈꾸는 다급한 시절은 언제 잦아들는지

나의 슬픈 아성에 감긴 방음껍질은 끈적하고 달콤하다 시대는 분절을 기다린다.

 

  비어 있는, 마침내 비어버린 반찬통을 꺼내 열었다 통에게서 뚜껑을, 뚜껑에게서 통을 분리하려 엄지와 검지로 집어 올렸다 뚜껑에 진득하게 눌어붙은 무언가가 서로를, 그러니까 통과 뚜껑을 꽉 껴안았다 둘은 사이가 지독히 좋아 비릿한 냄새가 났다 봉긋하게 피어오른다 악취의 형상이어서 이건 부패의 냄새가 아니다 통과 뚜껑의 진득한 사이가 만들어낸 관계의 재 같은 것이다 타올랐을 때가 있었겠지 마이크로 플라스틱이 천삼백육 도의 화로구 속에서 녹아들었을 때가 있었겠지 형체가 없는 채로 흐느적 틀에 부어져 그대로 굳어져 버릴 운명을 몰랐던 때가 있었겠지 쟤들은, 뜨겁고 말캉했던 때가 있었겠지 금방 볶은 진미채를 담았을 때가 있었지 물엿을 많이 넣어 얽히고설킨 진미채 덩어리가 풀리지 않았던 그걸 보고 웃었다 마치 밤에 피는 우리 같다고 고작 진미채 한 덩어리로

‘안 되겠어 냉장고를 청소해야지’

아니, 되겠어, 청소가, 락스를, 페트병에, 담은, 손에, 쥔, 청소, 하면, 돼

지문이, 뚜껑의, 빗금을, 만졌다

엄지 ( ( ( ( ( ) ) ) ) ) 검지

 

열었다니까

 

  냉장고를 열면

떠올렸던 걸 다 까먹는다던데

  “잉크 진짜 몸에 안 좋아. 특히 영수증, 신문지, 전단 이런 거…… 손에 묻잖아. 너도 뚜껑 닫기 전에 손을 씻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살만할 정도로만 읽어. 알았지?” “아니…….”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나 아직 못 열었다니까. 내가 문을 한 번 열었다가 모든 이들의 걱정이 사라지면 어떻게 해? “그건 내 잘못이잖아.” 나는 잘못하고 싶지 않아. 특히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는.

  냉장고 속 아이들이 아는 계절은 여름일까 겨울일까

  계속 지내면 모를까 봐, 걱정되니까

  내가 문을 열면, 무언가 빠져나오고 또 들어갈 텐데 그렇게 되면 잠깐 온도가 오를 거고, 추위라는 게 여름의 일인지 겨울의 일인지 헷갈리게 할까 봐

  나는 안 그러고 싶어

  “꺼내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차갑겠다, 그런데…….

  (까먹었다!)

  무슨 말 하려고 했지? 일기를 못 쓴 지가 오래되었다. 굶으면 일기를 못 쓰니까. 배고파서 못 쓰는 게 아니다. 쓸 게 없어서 못 쓴다. 볼펜을 굴릴 수 없게 된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자주 낸다. 신호등이 헷갈린 사람들은 악어 탓을 한다. 악어 탓을 하다가 시인이 된다. 시인들은 수많은 질문들 사이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 있다는 말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들의 자기소개에는 마법이 있다. 그들만이 가능한 질문은 정말 여러 번 세상에 던져진다.

  “무슨 말 하려고 했지?”

 

  안에서 비디오테이프 다 고쳐졌으면 어떻게 해?

  바보야, 그런 걸 꺼낼 때 시대가 나뉘는 거야

  그럴 때 사람들이 걱정을 잊는 거야

 

  피를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 가장 먼저 냉장고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제 먹은 걸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어제 먹은 걸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마법사다.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그들의 세상은 따로 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어서 그들은 선택한다. 이곳을 환기하기로. 분명히 무언가 달라질 것이다. 의심하지 않는다. “나에게 능력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비밀로 해야 하고, 비밀은 그들에게 힘이 된다. 그 모든 걸 일기장에 써야만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들켜야 한다. 문에 달린 손잡이를 위해서.

 

  뚜껑에 담긴 것과 냉장고에 넣어둔 것과 시의

  공통점을 설명하시오

  정답은 속에 있는 건 썩지 않는다

 

  “시 쓰는 게 재밌냐”라는 물음은 언제나 의문투성이

“재밌는 시가 어디 있겠어요,

행복하려고 쓰는 시라면 모르겠지만”

  “행복한 시를 쓰는 건 즐겁냐”라는 물음은 언제나

“즐거운 시가 어디 있겠어, 외로우려고 쓰는 시라면”

  “외로운 시를 쓰는 건 슬프냐”

“슬픈 시가 어디 있어, 괴로우려고”

  “괴로운 시”

“웃는 시가 어디”

  “시”

“어디”

  정답은 속에 있는 것만 썩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거꾸로 읽어야 하지 않겠어?”

  속 썩임.
  부패를 믿는 것은 거만이었습니다. 보도 위에서 악어 탓을 하던 시인들은 간격에 얼굴을 묻고 말았습니다. 어디로 간 거지? 뛰어내린 다음에는 (비록 헤엄하지 못할지라도) 솟구쳐 올라야만 합니다. 그런 법칙은 정말로, 지루하다고 여겨질 때 가장 효과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