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앱 때문에.)

  타이어에 구멍이 났고 벌판에서 달리기를 멈추어야 했을 때 질식하는 줄로만 알았어. 심야 버스는 함께 달리기에 용이하다고 했던 네 말을 믿어서는 안 됐는데. 조깅을 할 적에 자전거나 버스를 대여했고 그동안 아주 효과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조깅은 다른 말로 건강달리기래. 우리는

  (          )에서부터

  끌어내리고 쏘아올리는 숨의 국지에서 벌어지는 틈새

  외기권과 내핵이 사실은 한패라서 나에게 합장하는 이야기

  고동 울려 나의 으스러진 날개뼈, 모두 거짓이고 잘못이야

  내 심정의 처마 나즈막에 울먹이는 뻔하고 흔한 기대에 잡아매이면

  무수한 갈래 속 어느 흐느낌 위로 마침내 내릴 사라수 씨앗은

  기껍게 어리석고 비겁한 속내를 아득히 덮어줄 것만 같아서

  (그래 맞아, 난 알겠다고 하는 거야)

  유리병처럼 남몰래 일렁이며 색채가 산란하는 기다림의 끝에

  어쩌면 생이 지극하게 움틀 수도 있을 몰락의 풍경이겠다

  그들이 한 점에서 만나는 데 걸릴 시간의 최솟값을 구할 수 있는지 논하시오.

  (단, 추측//증명이며, 선로≒꺾을 수 없다.)

  억겁과 찰나가 사실은 한때라서 나에게 산탄되는 이야기

  열렸지만 사람은 갈 수 없는 신도神道

  한 때는 용이었을, 혹은 사람이었을 누군가의 신사를 지나

  세상은 호수와 하늘 사이 인간의 길로 나뉘어

  유황 향 나는 따신 물엔 금색 잉어가 산단다 용이 될 고기가 산단다

  물오리 한 마리 문 위에 앉아 날개를 말리고

  물오리 한 마리 문 아래 서서 나를 보네

  수백년 삼나무 단풍나무 하늘을 가렸지만

  어느새 하늘은 물빛으로 일체가 되어

  문은 열렸다 금린의 문은 열렸다

  새는 문을 지나 하늘 위로, 호수 아래로 날아오른다 날아내린다

  남은 것은 금색의 잉어, 고기가 되지 않을 물고기

  따스함 버리고서, 용이 될 물고기

  언젠가 물에 비칠 그런 고기

돼지감자

돼: 돼지 삼 형제가 힘을 합쳐 무서운 늑대를 물리치는 동화책을 사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책을 사러 서점에 가던 길에 콜리플라워를 만나고 말았다

지: 지폐를 구겨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콜리플라워도 동화책을 사고 싶어할 거야 그렇지만 동화책이 한 권밖에 없으면 어떡하지 아이는 갈등했다 선물받고 싶은 마음과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다투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감: 감은 눈을 떴을 때 콜리플라워는 여전히 앞에 있었다 아이의 눈앞에 있어야만 하는 숙명을 가진 것 같았다 콜리플라워의 손에는 아기돼지 삼 형제 동화책이 들려 있었다

자: 자 이건 네 거야 이야기를 갈망하는 착한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야 콜리플라워가 웃었다 콜리플라워가 웃을 줄 알았던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는 건 사실 산타가 아니라 콜리플라워였던 걸까 동화책을 끌어안고 잠든 아이는 오늘도 콜리플라워 꿈을 꿨다

돼: 돼먹지 못한 끝, 되도 않는 인연, 분명 사랑의 총량은 같았을진대

지: 지금은 알 수 없는 수치에 수치스러운 지금 괜히 폰만 만지다가

감: 감춰야 할 것은 감정, 감각은 점차 무뎌져 갔지만

자: 자그맣게 남아 있는 건, 왜 네 웃는 얼굴이었을까

김구름

김: 김장철 할머니 집엔 웃음이 끊기지 않았다 

구: 구수한 된장 냄새, 알싸한 고추 냄새

름: 음식엔 손자 향한 사랑, 따뜻했던 그때의 향기

김: 김에 싸 먹으면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맛이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다
구: 구름을 김에 싸 먹을 때 우리는 정확히 묘사할 수 없는 맛에 기뻐했던 것 같고
름: 음식이 아니라고 믿어왔던 것들조차 먹을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완충재

완: 완성은 시련을 부른다, 공들여 쌓은 돌탑을 부수려는 건 아이들의 숙명이라

충: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무너져도 울지 않고 싶었거든

재: 재차 시도하는 것도 재능이야, 잠시 기다려 줄 수 있겠니

완: 완만한 언덕 위 꽃잎은 하늘로 뿌려져
충: 충동적 시선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재: 재차 불러 보아도 퍼져 나가는, 그때의 그 향기

봉봉

봉: 봉숭아꽃 활짝 피던 시골집 앞산에는

봉: 봉숭아 물들이던 우리 할매, 추억이 함께 피어 있지요

봉: 봉투에서 꺼낸 식빵은 노릇하고 바삭하게 구운 것이었다 다 먹고 난 뒤에도

봉: 봉투 끝자락까지 새벽의 오븐 향기가 남아 있었다 영영 잊지도 못하게,

김민서

김: 김씨는 소행성 RLA0722에서 가장 희귀한 성씨로, 행성에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엄청난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는 미신이 있었다
민: 민증을 가리거나 숨기는 게 습관이 됐다 나를 만난 사람이 불행해지면 나 또한 불행하다고 느낄까 봐서
서: 서로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성과 이름이 전부 같아지길 바랐다 희귀하고 특별한 것보다는 평범하고 보통인 쪽이 더 행복하리라 여기면서…

김: 김이 나는 새벽녘 마을 변두리에는

민: 민물고기 한 마리 강을 거슬러 올라

서: 서울의 이야기 보따리, 한아름 감싸 안고, 돌아가는 내 고향 나의 집

이부

이: 이름을 불렀을 때 더 선연해지는 존재가 있었다.

부: 부인할 수 없이 또렷한 사랑 앞에서 나는 우리의 모양에 윤곽이 생겼음을 느꼈다.

이: 이리저리, 이러쿵저러쿵, 이렇게 저렇게 흘러가는 하루

부: 부산스러운 마음은 그만큼 부지런했다는 뜻이겠지요, 내일이 부담스러운 건 그만큼 부딪쳐 봤단 말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