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메일링 「히히힛」 3. 너는 나에게 장마가 오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는데

2024. 7. 10.

격주 시 메일링「히히힛」 0. 뚜껑을 닫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시의 시대가 찾아왔다

이 메일이 잘 안 보이시나요?

2024.07.10.

시 메일링 매거진 「히히힛」

3. 너는 나에게 장마가 오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는데

창작동인 '시시싯'의

시 메일링 매거진 「히히힛」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

창작동인 시시싯의 에디터 M입니다.

이번 주도 어김없이 찾아온 시 메일링 「히히힛」!

지난 「히히힛」은 즐겁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지난주에는 1회의 수정 재발송분을 보내드렸는데, 잘 받으셨을지요.

요즘은 장마 탓에 종일 습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 내리는 것이 쨍하고 무더운 여름에 필요한 일인 줄 알면서도, 장마 기간만큼은 마냥 여름을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장마의 습기와 인파의 열기를 견디며 편도 한 시간 넘는 출퇴근 시간을 견디다 보니, 얼른 장마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그래도 제가 있는 곳은 오늘 해가 났습니다. 아침에 창문을 열자마자 환하게 들이쬐는 햇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떠가는 걸 보고 있으면 자연히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MINSEUL

같은 곳에서 발길을 멈추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랜만의 맑은 하늘에 떠오른 몽실몽실한 구름의 찰나를 담고 싶어 카메라를 켠 이들입니다. 두둥실 흐르는 구름, 그 앞에서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한 사람들. 그 순간을 마주하자 구름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름은, 제 모습이 사진에 담기고 있음을 알고 모양을 가다듬는 게 아니었을까요.

푸른 하늘을 유영하는 사진 속 구름을 보고서 달콤한 생크림을 떠올렸는데, 다른 누군가는 구름이 외계 생명체를 닮았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미묘한 시선의 차이가 시를 만들어냅니다. 일상 속에서의 다름이 모이고 모여 시를 형성합니다. 저는 차이로부터 발현되는 상상력을 목도할 때마다 시가 바로 곁에 있다는 감각을 경험합니다. 요즘은 시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종의 위안을 얻고 안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회차 메일링은 릴레이 시, 개인작 연재와 더불어 지난번에 예고했던 시시싯의 독서모임 기록을 전해드립니다. 김민정 시인의 시집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럼,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

💖 목차 💖

이 주의 릴레이 시 연재 뚜껑을 닫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시의 시대가 찾아왔다_03

이 주의 독서 대화 "항상의 여기와 가끔의 거기"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시집 독서모임

이 주의 개인작 연재 장마 연구_두시

이 주의 개인작 연재 하하하_히읗

삼행시를 지어드립니다 독자 이벤트

🥨 이 주의 릴레이 시 연재

(이전 회차에 연재되었던 부분은 회색으로 처리했습니다.)

03 뚜껑을 닫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시의 시대가 찾아왔다

- 창작동인 시시싯

빨간불, 신호등. 사람 모양.

얼굴을 포장할 때는 떠올리지 못했던 춤.

(배달앱 때문에.)

타이어에 구멍이 났고 벌판에서 달리기를 멈추어야 했을 때 질식하는 줄로만 알았어. 심야 버스는 함께 달리기에 용이하다고 했던 네 말을 믿어서는 안 됐는데. 조깅을 할 적에 자전거나 버스를 대여했고 그동안 아주 효과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조깅은 다른 말로 건강달리기래. 우리는

( )에서부터

( )까지

「떡볶이 1인분, 순대 1인분(내장 포함), 꼬마김밥 다섯 줄, 무료 제공되는 어묵 국물, 국자에 손을 데어 뜨거웠던 시절, 빵집에서 흘러나오던 캐릭터 송, 주인아주머니의 실수, 아주 약간의 유치함, 이런 걸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유치하다고 여겨질까?」

오늘 먹었던 것들을 일기에 쓰는 습관이 생겼어. 심지어 달리던 버스가 도로 한복판에서 멈추고 악어들이 차창을 기어오를 때도 나는 일기를 쓰고 있었어. 편안한 거리감과 서비스를 맞바꿀 수는 없었으니까. 요즘 일기 쓰기가 유행이라지? 봄이 되었잖아, 호수를 돌며 꽃놀이를 하다가도 일시에 멈추어 일기를 쓰는 사람들. 그게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아무튼 정말 삶은 이상해. 달걀 같아.” 일기 놀이야? 악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도 펜 놀리는 걸 멈추지 않는다. 사람 머리가 목에 걸려서 기침하는 악어…… 악어 감기에 걸리면 약도 없다. 다 쓴 일기장은 그냥 버리지 않고, 글자 위에 다시 글자를 덧입히는 용도로 사용한다. 배달앱 알림이 삼백 개 이상 쌓였는데, 어라, 그러면 혹시 현관 앞 확인해 봤어? 일기 때문에 복도에 배달 음식을 쌓아 둬선 안 되지. 아무래도, 먹지 않고 남기는 건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니까.
(신문 좀 읽어. 그리고 신문지로 냉장고 청소를 하는 거야.)

2024년 4월 31일 수요일
그게 말이야, 제임스가 시인이 된 날
제니라고 할까 제제라고 할까 제임스라고 할까 제 ―
필명을 막 다 정했을 때 또 일기장 한 권을 다 써 버렸어

냉장고에 비어 있는 반찬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사실이 나를 웃게 만들어
나는 반쯤 차 있다고 했고 또 반쯤 비어 있다고 했지, 그래서 너는 울었던 것 같아
냉장고는 있을 건 있고, 없는 게 없는 오일장 같다는 거
공원엔 자전거, 웃어젖히는 아이, 소리 지르는 새,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와 얼굴을 붉히는 연인들

그때, 네가 화장실을 나오며 휴지가 없다고 말한다
빨간 건물 외벽에는 머리숱 많은 남자가 탈모 샴푸를 들고 있고 그 앞에 줄을 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웅성대고
옆에선 지하철이 덜컹거리고 있다 아무래도 악어들이 지하철을 타기로 결정한 듯하다 쇳소리, 기침 소리, 메아리로 부딪혀 세상엔 이명이 있다 소음에 놀란 벚꽃잎이 지하철에서 시를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다 그렇게 창으로 들어온 벚꽃잎을 잡상인이 천 원에 팔고 있다
너는 전혀 살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강 철교 위에서 위태롭게 지하철이 멈춰 서 있어서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악어와 시인과 벚꽃의 몸무게를 다리가 버텨 내고
소리친다.
그대로 있구나 잘하고 있구나 그대로 있어라 잘하고 있어라, 그래도 있을게 잘하고 있을게
벚꽃을 삼킨 악어는 흰빛을 내며 한강으로 뛰어든다 한강이 꽃내음 나는 물줄기가 될 때, 네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 아마도 웃고 있었다.

강물이 치밀어 올린 부아들은 어디에 잠겨 있을까?
철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성긴 식사, 그러니까 그 식사가 적힌 일기들이 쏟아지고 있어

이 봄에 천장은 없으니까 붉은 인간의 무단횡단, 행간 사이를 거침없이……

(이것은 건강달리기인지 검토가 필요해.)

듣고 있어? 나는 언젠가 입 속에서 찰랑거리는 달걀들을 씹어 짓이겨 삼켜야 하는 거야

제임스는 왜 그랬을까 이 춤사위는 꼬마김밥처럼 간편하지는 않더라, 다섯 개를 넘었어

무게는 언젠가 점프가 될 거야 쌓이는 참회들의 꼭대기에서 건네는 꽃과 악어를 향한

샤를카미유의 사단조 교향시…… 왜냐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니까

마구 섞여 부패하지 말고 천천히, 생동에도 조화가 필요해 보존이 필요해 알고 있지만

찰나에서 영원을 꿈꾸는, 순간에서 완성을 꿈꾸는 다급한 시절은 언제 잦아들는지

나의 슬픈 아성에 감긴 방음껍질은 끈적하고 달콤하다 시대는 분절을 기다린다.

비어 있는, 마침내 비어버린 반찬통을 꺼내 열었다 통에게서 뚜껑을, 뚜껑에게서 통을 분리하려 엄지와 검지로 집어 올렸다 뚜껑에 진득하게 눌어붙은 무언가가 서로를, 그러니까 통과 뚜껑을 꽉 껴안았다 둘은 사이가 지독히 좋아 비릿한 냄새가 났다 봉긋하게 피어오른다 악취의 형상이어서 이건 부패의 냄새가 아니다 통과 뚜껑의 진득한 사이가 만들어낸 관계의 재 같은 것이다 타올랐을 때가 있었겠지 마이크로 플라스틱이 천삼백육 도의 화로구 속에서 녹아들었을 때가 있었겠지 형체가 없는 채로 흐느적 틀에 부어져 그대로 굳어져 버릴 운명을 몰랐던 때가 있었겠지 쟤들은, 뜨겁고 말캉했던 때가 있었겠지 금방 볶은 진미채를 담았을 때가 있었지 물엿을 많이 넣어 얽히고설킨 진미채 덩어리가 풀리지 않았던 그걸 보고 웃었다 마치 밤에 피는 우리 같다고 고작 진미채 한 덩어리로

🥨 이 주의 대화

"항상의 여기와 가끔의 거기" ٩( ᐖ )人( ᐛ )و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김민정, 문학과지성사) 시집 독서모임

💌 2024년 1월 24일 💌
- 본 대화는 ZOOM 화상회의를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 본 대화에서는 평어를 사용하였습니다.

Q . 시집을 읽고 난 뒤 전체적인 감상을 나누어 보자.

A 전체적으로 통상의 시 모음이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어. 시인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감상으로 보이는 내용이 많았고, 시인과 화자가 일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정말 많이 받았어. 구체적 시간 및 지명도 자주 나왔고. 그런 것들이 현실성을 부여하면서 시인과 화자를 떼 놓을 수 없는 상태를 형성한다고 생각해. 한 사람의 다이어리같은 느낌. 표제작이 있을 줄 알았는데, 시집 제목은 '시집'의 제목일 뿐 개별적인 시의 제목이 아니었다는 게 놀라웠어. 작품에 그대로 나오는 말도 아니었지. 파편적인 소재나 심상을 조합해서 만드는 시집 제목은 처음 접해 보아서 신선했어. 읽고 나니 시집 제목이 시인의 성격을 잘 설명해주는 제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고. 정제되어 있지만 동시에 날것의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할까.

K 처음에는 흔한 사랑 시의 모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어. 사랑과 결부되어 있는 것들이긴 하지만, 증오, 연민, 결핍, 애증 등 복합적인 감정이 많이 나타나서 재미있다고 생각했어. 김민정의 발칙한 언어가 잘 드러나는 시집이었다고 생각해. 도발적이고 발칙한 여성 시인의 시가 등장하면서 시의 패러다임이 바뀌어갔다는 게 느껴졌어.

M 김민정 시인의 유머는 너무나도 별것 아니고 세속적이며 어쩌면 이상하기도 한 언어에 담겨 있었어. 아주 무거운 것을 무거운 것 그대로 쓰지 않는다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해. 시인을 떠나보내고 유고집을 엮는 김민정 시인은 작품 속에 등장하듯, ‘제사장’의 역할을 했어. 그러니까 사실 죽은 시인, 산 시인들의 이야기가 두루두루 등장하는 이 시집은, 아주 작게 보이고 아득한 ‘죽은 자들의 거기’를 바라보며 너무나 많은 것을 안고 있는 ‘산 자들의 여기’에서 시인이 쓰는 서한집 같은 거였어. 이 제목의 언어가 유희처럼 읽힐 수 있는 것 또한 시인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여서, 그게 놀랍기도 하고 또 존경스럽기도 했어.

C 시인이 된다는 건, 자신의 언어에서 얻어질 수 있는 다의성을 관망하며 즐기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시집 읽으면서 드는 전체적인 느낌은 도발적이고, 감각적이면서, 현대인스럽고, 수많은 경험들이 당사자만이 쓸 수 있는 방식으로 쓰였지. 실제로 경험하고 느낀 것을 잘 쓰신다는 인상. 기발한 표현들이 많아서 읽는 내내 재미있었어.

H 김민정 시인이 어떤 분인지 몰랐다가, 작년에 북토크에서 처음 만나뵈었는데, 그때 편집자로서 다른 시인들의 시집 제목을 지어 주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됐어. 시인으로서도 성공한 사람, 편집자로서도 센스가 넘치고 대단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시집을 읽었어. 필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서사를 읽을 수 있어 즐거웠고, 한편으론, 비속어를 이렇게 많이 쓴 시를 처음 읽어봐서 엄청 발칙하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지.

S 이 시집은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제목,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기가 힘들잖아? 그래서 계속 마냥 기억만 하고 있다가 이번에 읽게 된 거야. 처음에는 "거기로 갈까", "여기로 와" 했을 때 서로 어긋나느라고 못 만나서 결국에는 헤어져버리는 사람들의 말인지 궁금해서 책을 폈는데. 나는 시인께서 너무 ‘말’을 하고 계셔서 그런 ‘말’을 한다는 인상이 너무 좋았어. 글이 글이지 '말'같지는 않을 때가 많은데 이 사람은 말을 하는 느낌이란 게 확 느껴졌어. 말을 하면서 나랑 친하게 지내보지 않을래? 하는데, 어느 순간 가까워지게 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어. 나는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작품에 드러내는 걸 좋아해. 옛날부터 말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 많았는데, 김민정 시인이 너무 당차고 확 들어오는 말을 잘 하시는 분이어서 읽으면서 긴장도 많이 했고, 김민정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음성 기호가 무척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다 읽고 제목을 봤을 때 드디어 친구가 좀 됐다고 생각했는데, 헤어지는 중이라고 해서 너무 가차없으신 거 아닌가? 싶었어.

Q . 시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소개해 보자.

A 「나는 뒤끝 짱 있음」은 시인의 연상기법을 잘 느낄 수 있는 시였어. 시인의 머릿속을 쫘아악 스캔 떠서 이어 붙인 것 같아. 연상작용을 잘 나타내서 재미있었고, 단어들을 이어 붙였을 뿐인데, 거기서 김민정 시인 자체가 보인다는 사실이 참 좋았어.

H 「나는 뒤끝 짱 있음」은 '짱'이라는 어휘가 시어가 돼서 제목에 쓰인 게 인상적인 시였지.

A 시작이 모닝콜, 아침인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병과 약과 "내일이 없다"는 표현이 나오니까 뭔가 시가 일생을 그리는 것 같지 않나?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을 담아내지 않았나? 싶어서 치밀한 계산으로 쓰인 시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

K 나도 「나는 뒤끝 짱 있음」이 기억에 남는데, "애무는 있고~"부터 "~사랑은 없음"까지가 제일 인상적이었어. 먼저, 오랫동안 고정적이었던 ‘여성 시인’의 이미지를 타파하는 느낌을 줬어. 그리고 시의 내용을 읽으면서 사랑 없이 순간적인 쾌락이나 도파민만 추구하는 사람들의 공허한 표정을 떠올렸어. 그러면서 동시에 사랑 없는 쾌락이 과연 나쁜 것일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고, 끊임없이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

H 나는 「실마리」라는 시가 흥미로웠어. '문발씨유점'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도 재미있었고,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쓰게 됐는지도 궁금하고. 시어 사용에서 드러나는 시인의 내면이 굉장히 사실적이었다고 생각해.

C 「이제니가사람된다」가 기억에 남네. 정제되어 있고 아름답고 서정적이어서 국어 교과서에 나올 법한 시의 형식을 완전히 뒤집는 짜릿함을 준달까. 김민정 시인의 시에는 전반적으로 다 그런 느낌이 있지만. 인간, 여성, 시인, 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에서 오는 염세가 있는데, 그런 느낌이 심화될수록 시는 더 유쾌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 시가 주는 '피식' 하는 감각이 좋았어. 「나를 못 쓰게 하는 남의 이야기」 연작은 글을 쓰고 싶고, 또 쓰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작품들이라고 생각해.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꿰뚫는 발상이 담겨 있었어.

K C의 이야기에 덧붙이자면, 독자들이 김민정의 언어에 열광하는 이유가 일종의 ‘대리만족’이 아닐까 생각했어. 다들 속에 내뱉고 외치고 소리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사회적 이미지와 관념 때문에 그걸 숨기고 살아가잖아. 그런데 김민정은 숨기지 않으니까. 터놓고 소리지르니까. 내가 하지 못하는 걸 그녀가 대신 이뤄주는 기분이 들어서 다들 김민정의 시를 좋아하게 되는 거 아닐까 싶었어.

S 제이크 나오는 시들을 친근하게 읽었는데, 제이크가 대구에서 살고 있어서 놀라웠어. 제이크가 감삼역에 산다고 했는데 대구에는 각산역이 있거든. 그래서 각산역도 계속 생각나고. 내 이야기가 떠오르는 시여서 기억에 남더라. 「난데요」는 호루라기를 물고 있는 자세가 너무 시인 같다고 생각했어. 이 시집의 유래를 떠올리니까 슬퍼지기도 하고.

A 나도 「난데요」에서 "호루라기 불지도 않는데 물고 있는" 게 슬퍼 보이기도 했어. 시에서 무언가를 비속어로 표현해내는 것은 곧 '불고자 하는 시도'가 아닐까. 실제로 나는 호루라기를 가지고 있는데, 불 수 있는 기회가 잘 없는 것 같아. 호루라기 불면 시끄럽고 이목을 집중시켜서 잘 안 쓰게 되거든. 그런 점에서 시에서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과 호루라기 불기는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

M 나는 본래 서사가 오밀조밀하고 장치적이며 구조적으로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시에 끌리는 편인데, 일단 김민정의 시에는 그런 도구적인 면이 적게 드러나는 편이고, 아주 자유로이 시를 쓰고 있으며, 또 잊어버릴까 두려워하는 감정들이 녹아 있어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시를 받아들이게 됐던 것 같아. 그래서 시인으로서 다른 시인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 더 아프게 다가왔고, 「수경의 점 점 점」을 잊을 수 없었던 것 같아. "내 안에 허용하게 된 말줄임표"는 허수경 시인을 내내 기억하고 품은 채 있지만, 그에 대해서 한순간에 전부 말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함축하고 있어. "올라갈 때의 행방은 왜 내려올 때 불명이 될까요", "귤의 껍질을 벗겨 한 짝만 남은 한 짝의 커피색 스타킹에다가 귤껍질이나 모으는데" 같은 표현들도 흥미로웠고. 시시싯 사람들이 나중에 개인 시집을 내고, 좀더 성숙한 시인이 된다면, 그때는 우리도 서로에 관한 시를 쓰게 될까? 하는 생각도 했어.

Q . 김민정의 곡두(*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란 무엇일까?

A 화자를 곡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화자가 엄청나게 말이 많아. 이야기하는 게 정말 많은데, 그 말을 따라가다 보면 남는 건 화자가 보았던 대상들인 것 같아. 화자가 포착한 것들이 시에 남으니까, 이 시집에서 '곡두'를 '화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화자도 그렇잖아. 화자야말로 '진짜'를 알 수 없는, 환상같은 존재가 아닐까?

M 곡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게 만드는 시도. 잊고 싶지 않은 장면들을 언어로 형상화하여, 기억하려는 시도. 곡두는 어쩌면 김민정이 시인으로 살면서 도무지 잊을 수 없는, 그러나 자칫하면 한순간에 스쳐지나가 휘발되어 버릴 장면들을 세어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함. 그러니까 기억하는 태도, 이름 부를 수 있게 하려는 노력, 그런 것들이 모여서 곡두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해.

A 꼭두각시 인형극처럼 시가 모두 단막극같다는 생각이 드네. 44개의 에피소드 극으로 승화시킨 거지.

H 넘버링 발상 자체가 특이하다고 생각해. 모든 시에 '곡두'와 번호를 부여한 거잖아? 곡두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거기로 떠난 다른 동료 시인들'이 계속 떠오르네.

C 살아가면서 시 쓰는 각자에게 내려오는 '시내림' 같은, 계시와도 같은 서정이 있는데, 그것이 곡두의 정의와도 같다는 생각을 했어. 시인이 직접 겪었던 일을 시에 담는 작업을 많이 하니까,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고, 시에 담아내는 과정 자체를 곡두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곡두라는 단어가 '꼭두각시'를 떠올리게 하고, '화두는 곡두'라는 말에서 오는 어떤 느낌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곡두'의 '곡'에서 오는, '곡하는 듯한' 느낌이 총체를 만들어. 생각해 보면, 시를 쓰는 것과 '곡두하는 것'이 김민정 시인에겐 같은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S 내가 찍은 사진 모아두는 폴더 이름이 몇년째 '시뮬라크르'인데…… 그게 곡두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곡두 같기도 했고, 김민정 시인이 시집에서 친구들 이름을 부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어.

K 김민정 시를 더 읽어가면서 알아가야 할 부분일 거 같은데, 지금 느끼는 바로는 앎과 모름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가일 거라고 생각해.

A 총체적인 이야기인데, 난다에서 출간되는 시의적절 시리즈 1월 책인 『읽을, 거리』를 읽었거든. 읽으면서 느낀 김민정 시인의 글은 톤 자체가 되게 일기같기도 하고, 편지같기도 하고, 날것같기도 하고…… 여러 가지 면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M 날것은 맛있지…….

🥨 이 주의 개인작 연재

장마 연구

- 🍀두시

주먹을 쥐면
내 손의 뼈가 느껴졌다
그게 손이 비어서 가능하다는 걸 알 때마다
힘이 풀렸다

너는 나에게 장마가 오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는데
빗줄기가 굵어질 때
너와 내가 덩달아 심각해지지는 않아서
비는 점점 거대해지는 거라고 했다

눈을 수술한 뒤로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구별하기가 어려워졌다
몸을 웅크리면 생기는 작은 내부에서 눈을 뜨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산타를 걱정하지 않는데
내가 산타를 아주 오랫동안 믿어왔다고 말하자
너는 선물처럼 웃으면서

산타를 믿는 동안 너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가 그만큼 중요하지 않았다는 거 아니겠어
말이 안 되는 게 말만 안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거 아니겠어

나는 걱정도 없이 베란다를 닫고
불을 피운다
내일처럼 서 있는 역삼각형 무늬를 들여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너는 함께 말이 없다가
내 손을 잡고
몇 번 흔들고 있다

🥨 이 주의 개인작 연재

하하하

- 🐢히읗

하수구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서 안을 쳐다보고 싶었다

정신 좀 차려 하수구의 외침은 배관을 따라 공허하게 울려 대고

이유 모를 화를 내는 그를 향해 한마디를 해 주는 너를 보는 나를

하

이름 모를 하 아무개 시인이 나를 보며 한숨 쉬는데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하하하 웃었지

하염없는 하품

어이없는 아이

유죄 아니면 무죄인 판결은 너무해

나에겐 휴재를 주렴

액체는 고체 위와 아래와 옆을 흘러가고 더 깊숙이

덥썩 잡아올린 단어를 건져 올려 (얘, 덥썩이 아니라 덥석이란다)

월척을 낚은 어부는 파닥거리는 언어를 칼등으로 쳐서 기절시켰다

그래, 덥석 집어 올린 채

나는 그대로 뽑혀

하수구를 따라 배수구로

하루를 따라 밖으로

끄집어내어 남은

신음소리를 낸 것이다 (얘, 신음소리는 동어 반복이란다)

「히히힛」 독자 참여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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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힛

창작동인 시시싯의 에디터 M이 야심차게 기획한 시 메일링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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