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메일링 「히히힛」 8.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면 시가 계속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2024. 10. 4.

격주 시 메일링「히히힛」 0. 뚜껑을 닫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시의 시대가 찾아왔다

김이강 시인의 신작 시집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현대문학 핀 시인선 52)를 읽으면서 '믿을 수 있는 시인'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시인이 있다는 사실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서요. 그가 시인이기 때문에 믿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시인을 믿는다 해서 인간이란 종 자체를 믿게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시인'이란 말이 참 좋은 울림을 주지 않나요. 그러니까, 안정감을 주는 것이지요. 시인에 대한 믿음은, '믿음'이란 개념을 믿기 어려운 혼돈 속에서 읽는 이를 구제해 주는 것만 같습니다. "믿음이 다 뭐야? 그렇지만 최승자는 믿지."라는 구절은 시를 읽는 독자를 위로합니다. 믿음이란 지극함의 동의어임과 동시에 형체 없이 얄팍한 개념일 뿐이기도 해서, 우리는 믿음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자주 잊곤 합니다. 알고 있었던 것이 맞는지 끝없이 의심하면서요. 그래도 누군가를 믿으며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요.

지난 토요일, 시시싯 동인들을 만나 시 이야기를 하고 책 이야기를 하고 문학 이야기를 하고 또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나의 최애 시인은 영영 시시싯 동인들이겠구나. 저는 그들을 시인으로 믿을 수 있으니까요. '믿음'은 못 믿어도 시인은 믿으니까요. 시어는 계속해서 저로부터 멀어지겠지만, 그럴수록 시인은 가까워질 겁니다. 알 수 없는 것을 계속 해나가려는 사람들이 시인이기에. 시인이란, 멀어짐을 가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러니까, 단어는 믿지 못해도 시시싯은 믿는다고, 그건 곧 '시시싯'을 믿지 못하면서 시시싯을 믿는다는, 그런 말.

여러분께도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시인이나 시라면 더 좋을 테고요. 믿게 되는 것은 사실, 믿고자 하는 노력이고 또 앞으로 나아가고자 힘을 내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신뢰란 존재하기 힘들며,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려 하는 움직임이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그런 움직임이 시로, 시인으로, 시시싯이란 형태로 현현됩니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밤의 표면에서 해가 드는 곳으로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 2401004 / 히히힛 에디터 M